어젯밤 갑자기 벌어진 일
거실 구석에 두었던 박스들이 눅눅해져 있길래 처음에는 창문 근처에 결로가 생긴 줄 알았다. 그런데 자세히 보니 보일러 분배기 쪽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게 아니라 거의 줄줄 흐르고 있었다. 당황해서 일단 수건을 몇 개 가져다 받쳐놓고 분배기 밸브를 잠그려 했는데, 이게 오래되어서 그런지 녹이 슬어 손으로는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. 결국 펜치까지 꺼내서 낑낑거리며 다 잠그고 나니 밤 11시가 넘었다. 보일러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접수를 하려니 시간대가 안 맞고, 당장 내일 아침부터 온수를 못 쓰게 될까 봐 마음이 급해졌다.
동네 설비 업체 찾는 것도 일이다
인터넷으로 충주 근처 설비 업체를 검색했는데 광고성 글만 가득해서 어디가 진짜인지 구분하기가 참 어려웠다. 다들 자기네가 제일 저렴하고 빨리 온다고 써놨는데 막상 연락해보면 오늘 당장은 안 된다는 곳이 대부분이었다. 어떤 곳은 분배기 교체 비용이 30만 원에서 50만 원까지 부르는데, 이게 정해진 가격이 있는 건지 아니면 부르는 게 값인지 알 수가 없으니 참 답답했다. 귀뚜라미나 대성셀틱 같은 보일러 제조사 고객센터에 연락해볼까 하다가도, 분배기 문제는 보일러 본체 AS랑은 또 다른 영역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일단 근처 설비 가게 몇 군데에 사진을 찍어 문자를 보냈다.
생각보다 더 복잡했던 분배기 교체
다음 날 아침 일찍 연락이 닿은 설비 사장님이 오셨는데, 분배기 상태를 보더니 한숨부터 쉬셨다. 10년이 넘은 아파트라 분배기 연결 부위가 부식된 건 당연한 거란다. 단순히 밸브 하나만 갈면 되는 줄 알았는데, 전체를 다 들어내야 한다고 해서 예산이 더 들게 생겼다. 처음엔 밸브 부속만 바꾸면 10만 원 안쪽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, 전체 교체 비용으로 40만 원 정도를 말씀하시니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. 예전에 부산 살 때 아파트 보일러 전체 교체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,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나 보다.
낡은 부품과 계속되는 찝찝함
작업을 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. 싱크대 밑 좁은 공간에 엎드려서 한참을 끙끙대시는데, 나도 옆에서 거들어야 하나 싶어 괜히 눈치가 보였다. 교체하는 과정에서 배관에 낀 녹물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걸 보니 그동안 이 물로 샤워하고 설거지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좀 찜찜하게 느껴졌다. 수리는 한 세 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. 중간에 부품이 하나 안 맞아서 사장님이 근처 자재상에 다시 다녀오시는 바람에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. 그냥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, 이렇게 중간에 공백이 생기니 더 진이 빠졌다.
끝나고 나니 남는 건 의문뿐
모든 작업이 끝나고 보일러를 다시 가동해보니 다행히 물 새는 곳은 없었다.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게 정말 적정한 가격이었는지, 아니면 급한 마음에 너무 비싸게 수리한 건 아닌지 계속 마음에 걸린다. 며칠 전 뉴스에서 보니 대형 발전소에 들어가는 배열회수보일러 같은 건 수천억 원대 수주가 오고 간다는데, 내 집 구석 분배기 하나 교체하는 것도 이렇게 신경 쓰이고 돈이 드는데 대규모 설비들은 도대체 얼마나 복잡할까 싶기도 했다. 당장 따뜻한 물이 나오니 다행이긴 하지만, 왠지 모르게 지갑도 마음도 썩 개운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.
